어디선가 나타난 녀석 때문에 휴가 일정이 대폭 달라졌다. 일단 라이딩은 물건너 갔고.. 이 찡찡이를 놓고 어디에 가려니 마음이 쓰여서 영 문제였다. 사료를 구하고, 동물병원을 찾았다. 바깥 생활로 문제가 생긴 전신 진드기를 제거하기 위해 약을 발랐고, 밥과 물을 충분히. 그리고 유일하게 변동없던 계획 하나, 한라산을 오르기로 했다.
심플한 코스다. 성판악 휴게소에서 출발한다. 관음사로 내려온다. 택시타고 다시 성판악에 돌아와 바이크 타고 집에 온다. 한줄의 문장으로 끝나는 여정이 10시간이 넘게 걸릴지는 몰랐다.
분명 출발 3시간까지의 페이스는 7-8시간이면 마칠 수 있을 듯 해 보였으나, 준비 부족이었고 체력 부족이었다. 그렇게 본의 아닌 디톡스를 했고 하산 후에는 4kg이 빠져 있었다.
여름날 한라산을 오른다면, 무게 분배를 위항 500ml 생수 4병, 점심 도시락, 당보충용 간식, 등산 스틱, 장갑을 추천하고 싶다.
한라산은 오르는 중간에 매점이 없었다. 그냥 대피소 뿐, 물이 나오는 곳도 없었다. 그러니까 오르기 전 준비가 모든 것이다. 60kg 체중으로 날듯 달리던 몸은 이제 없었다. 그래도 오르는 건 가능하지. 목적 의식이 있으니까..
괴랄한 현무암 지대를 지나고 나면, 마지막으로 사랑스러운 급경사 데크가 나타난다.
이것이 백록담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허접하게 준비해온 물 500ml가 동났고, 먹을 것도 없고..
스틱도 없고 장갑도 없었다. 믿을 건 밑창 단단하니 강력한 노스페이스 트레킹화 하나.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가 없으니.. 옆에 오르는 4학년 초등학생을 따라 결국 오른다.
정상에 오르니 백록담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 엊그제 내린 비로 물이 가득했다.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30분을 정상에서 쉬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진 구름 덕에 온연한 자태를 드러낸 백록담. 살면서 한번 보기도 어렵다는 그 곳. 두발로 올라야만 하는 곳에서 만나는 그 짜릿한 맛, 더할 나위 없음을 느끼며.. 배가 고팠다.
음식도 없다. 초콜릿도 없다. 내려가야 한다. 관음사로.. 해가 지기전에...
관음사를 향했다. 이곳에서 절실했다. 물이, 스틱이.
평이한 데크 길을 지나 산길이 시작될 무렵부터 무릎이 체중을 받아내기가 어려워졌다.
풍경을 낙으로 걷던 길도 끝나고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하산길.. 삼각봉 대피소에서 30분이나 잤건만.. 집중력도 목적의식도 없이 하염없이 내려왔다.
몇번을 쉬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관음사 휴게소에 왔을 땐.. 행군이 늘 그렇듯.. 모든 음식이 맛있고.. 맥주는 마약인가 싶었다.
'아 한라산 다신 안가'.
.
.
.
그렇게 3개월 지났고.. 겨울 한라산 오르고 싶다.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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